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담의 난 (문단 편집) === 대당 의존파 vs 자립파? === 귀족들 간의 뚜렷한 파별성을 확인하기 힘든 상황에서, 비담의 난의 동인을 내부에서 찾으려는 데 반대하고, 외부의 영향에서 찾으려는 시각이 제기되었다. 이 견해에서 "여자가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반군 측의 구호를 중시하고, 여왕 교체안이 다름 아닌 당태종의 발언에서 제기되었음을 주목하여, 난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대당 의존파와 자립파로 나누고 후자가 왕실을 지지한다는 식이다. 당시 신라가 대내외적으로 곤경에 처해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의 지도력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었으므로, '''여자가 해서 말아먹는다'''는 논리는 여왕에 반대하는 귀족 세력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왕 반대파와 지지파를 대당 의존파와 자립파로 그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가이다. 여왕에 대한 불만은 그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국가적 위기는 여왕과 다음 왕위 계승자로서 여왕의 등장 가능성에 대한 반대를 촉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굳이 여왕 반대파를 '대당 의존파'라고 규정하는가의 문제다. '자립파'라는 세력 또한 당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전개하였기 대문이다. 따라서 이는 지나치게 외인론에 의거해 신라 정치를 설명하는 주장일 수 있다. 오히려 역으로 비담 일파가 여왕의 친당정책에 반발하여 일어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름에 있어서도 비담은 불교적 색채의 이름인데 김춘추와 김유신 및 두 사람의 가까운 일가 인명들은 하나같이 유교적 색채가 강하다. 한 사람이 평생 사용할 이름을 짓는 기준은 그 가문이나 부모의 사상적 성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